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시간, 모성, 존재의 연결)

by money-log 2025. 7. 10.
반응형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さよならの朝に約束の花をかざろう, 2018)’는 오카다 마리의 각본 및 감독 데뷔작으로, ‘시간의 불균형’과 ‘영원하지 않은 관계의 가치’를 환상적인 세계관을 통해 풀어낸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 마키아는 천년을 사는 종족 ‘이오루프’의 소녀이며, 인간 세계와 우연히 얽히게 되며 평범한 인간 소년 에리알을 키우는 과정을 겪는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작용하는 두 존재 사이의 모성적 사랑은 단순한 육아의 서사를 넘어, 존재의 의의와 감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본문에서는 시간과 감정의 불균형 구조, 모성의 확장, 존재의 연결을 중심으로 이 작품의 핵심 의미를 해석한다.

시간의 불균형과 사랑의 유한성: 변하지 않는 자와 변해가는 자

마키아는 늙지 않는 ‘이오루프’ 종족이다. 그녀의 시간은 인간보다 수십 배 느리게 흐르며, 육체적 변화를 거의 겪지 않는다. 반면 그녀가 우연히 구해 키우게 된 인간 소년 에리알은 급속도로 성장한다. 영화는 이 시간적 불균형을 통해 관계의 비대칭성을 드러낸다. 마키아에게 있어 하루하루는 느리고 변하지 않지만, 에리알에게는 격렬하고 빠른 성장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 시간이다. 이처럼 ‘한 사람은 멈춰 있고, 한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의 설정은, 사랑과 관계가 ‘같은 시간성’을 공유하지 않아도 깊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에리알은 마키아에게 있어 ‘아이’이자 ‘연결된 존재’다. 하지만 그가 성장하며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감에 따라, 마키아는 점차 그와의 관계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더 이상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 순간부터 마키아는 모성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심리적 이별’을 정교하게 반영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사랑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형태와 위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은유한다. 결국 마키아는 에리알과의 관계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감정을 다해 사랑한다. 이는 영원하지 않기에 더 귀한 감정의 구조를 보여준다.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 관계, 끝을 알고도 시작하는 사랑. 이러한 설정은 영원한 삶이 진정한 축복이 아닐 수 있으며, 오히려 유한한 시간 속에서의 관계가 인간다운 감정과 의미를 더욱 강하게 담아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마키아의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이별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의 서사로 확장된다.

모성이라는 감정의 재해석: 혈연을 넘은 연결의 가능성

이 작품에서 마키아와 에리알은 생물학적으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마키아는 에리알을 ‘키운다’는 행위를 통해 모성을 형성하고, 이는 생물학적 조건이 아닌 ‘감정의 축적’으로서의 부모됨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를 통해 ‘모성이란 유전자나 피가 아니라, 함께한 시간과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현대적 가족관의 시선을 내포한다. 이 관점은 특히 비혈연 가족, 입양, 돌봄 관계 등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는 오늘날에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마키아는 에리알에게 어머니로 불리지 않지만, 그는 위기 때마다 그녀를 찾고, 그녀가 떠나려고 할 때 가장 큰 감정적 동요를 보인다. 이는 관계의 실질이 명칭이나 사회적 역할이 아닌, 감정의 밀도와 상호의존에 기반함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모성은 ‘보호하는 자’라는 수동적 역할을 넘어, ‘자신을 잃고도 타인을 지켜내는 존재’로 확장된다. 마키아는 에리알이 성장하며 자신을 떠나는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조용히 응원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에리알이 어른이 되어 노인이 된 채 마키아와 재회하는 장면은 모성의 완성을 상징한다. 더 이상 그녀가 그를 보호할 수 없지만, 그는 그녀를 인생의 기원으로 기억하고 있고, 그녀 역시 그를 자신의 모든 시간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관계는 모성이란 단지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기억하고 연결하는 감정임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생애를 초월한 감정의 구조로서 모성을 정의하며, 사랑과 헌신, 그리고 떠남을 품는 감정의 깊이를 시적으로 그려낸다.

이오루프의 직조, 꽃, 빛: 감정을 엮는 시각적 상징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는 시각적으로도 매우 정교한 상징 언어를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오루프의 천 직조’다. 마키아가 속한 이오루프 종족은 시간을 기록하듯 천을 짜는 종족이며, 이는 곧 그들의 삶이 ‘기억의 직조’임을 상징한다. 이 직조는 말로 하지 못하는 감정, 이어지지 못한 관계, 지나가버린 시간 등을 기록하는 비언어적 매개체로 작용하며, 영화 전체에 걸쳐 ‘감정의 보관소’로 기능한다. 꽃은 또 하나의 주요 상징이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등장하듯, ‘이별의 아침’에 ‘꽃을 장식하는’ 행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별을 준비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의식이다. 마키아가 이오루프의 전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가운데 꽃은 기억의 시각화이자,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상징물로 작용한다. 꽃은 피었다가 지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 이는 마키아와 에리알의 관계와 닮아 있다. 빛과 그림자의 사용도 섬세하다. 마키아가 인간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어두운 숲과 강한 햇살이 교차하며 낯설고 위태로운 환경을 표현한다. 이후 에리알과 함께하는 장면에서는 점점 따뜻한 빛이 늘어나며 안정감과 신뢰의 감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에리알이 성장해 독립해 갈수록, 빛은 점차 차가워지고, 명암 대비가 뚜렷해지며 ‘이별의 시간’을 암시한다. 이러한 시각적 연출은 감정의 흐름을 직접 말하지 않고도 체감하게 하는 방식으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처럼 시각적 상징들은 영화의 주제—기억, 시간, 이별, 사랑—을 보다 풍부하게 해석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직조와 꽃이라는 요소는 ‘무언의 언어’로서 영화 전체를 감싸며, 말보다 강한 정서를 남긴다. 오카다 마리는 이를 통해 “감정은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증명된다”는 명제를 조용히 전달한다.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는 판타지와 휴먼드라마가 아름답게 융합된 작품으로, 시간의 흐름이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도 감정은 깊이 쌓이고, 관계는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영원한 방식임을 말한다. 꽃처럼 피고 지는 감정, 직조처럼 남겨지는 기억, 그리고 함께한 그 시간 자체가 사랑임을 이 영화는 감동적으로 증명해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