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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연출 분석 (이상근 감독, 재난유머, 수직액션)

by money-log 2025. 7. 25.

엑시트

 

 

2019년 개봉한 <엑시트>는 이상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유쾌한 웃음과 짜릿한 긴장을 동시에 선사한 한국형 재난 영화입니다. 조정석과 윤아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정체불명의 유독가스가 도심에 퍼지면서 벌어지는 재난 상황 속에서, 평범한 인물이 온몸을 던져 가족과 사람들을 구해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재난물의 무겁고 비극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웃음과 액션, 감동이 균형을 이루는 독특한 감성으로 대중과 평단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특히 이상근 감독은 청춘세대의 현실과 좌절을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재난 상황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내며,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성공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엑시트>의 연출 전략 중 ‘재난과 유머’의 조화, 수직적 공간을 활용한 액션 연출, 그리고 인물 중심 감정 구조 설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합니다.

코미디와 재난의 이질적 결합, 재난유머의 연출 전략

<엑시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재난 영화로서의 긴장감과 유쾌한 코미디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상근 감독은 기존 한국 재난 영화가 주로 다뤄온 비극성과 감정적 과잉에서 벗어나, 오히려 ‘웃음’을 주된 도구로 삼아 관객과의 거리를 좁힙니다. 영화 초반은 조정석이 연기하는 용남의 현실적인 무기력과 사회 부적응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백수, 철없는 아들, 연애 실패자 등의 속성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오히려 관객에게 친근함과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유머는 단순히 상황을 희화화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극 전체의 리듬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합니다. 특히 유독가스라는 심각한 재난 요소가 등장한 이후에도, 인물들의 리액션이나 행동 양식은 여전히 코믹함을 유지합니다. 이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유머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긴장과 이완의 균형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며 벌어지는 실수 장면이나, 용남과 의주(윤아 분)가 옥상에서 가스에 맞서 싸우는 장면에서는, 공포와 동시에 엉뚱한 리액션이 겹쳐지며 관객의 감정이 다층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상근 감독은 슬랩스틱적인 요소를 과하지 않게 삽입하고, 대사의 템포와 타이밍을 정교하게 조절하여 웃음이 리듬을 해치지 않도록 연출합니다. 특히 조정석 특유의 표정 연기와 리듬감 있는 대사는 캐릭터의 매력을 강화하며, 유머의 주요 전달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결국 <엑시트>는 재난물이라는 무거운 틀 안에서 유머라는 감정 장치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대중적 장르로의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연출 전략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직 공간 활용 액션의 긴장감과 리얼리즘

<엑시트>의 액션 연출은 기존 재난 영화와는 차별화된 ‘수직성’을 기반으로 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상근 감독은 평면적인 도심 공간에서 벗어나, 건물, 옥상, 외벽, 크레인 등 수직적 공간을 주요 무대로 설정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재난 액션을 구현합니다. 이러한 수직 액션은 단지 스펙터클을 위한 설정이 아니라, 영화의 서사와 감정 구조를 동시에 이끌어가는 주요 장치로 작동합니다. 주인공 용남은 과거 산악 동아리 출신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로프, 암벽화, 손동작 등 실질적인 등반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고난을 돌파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도망’이 아닌 ‘정면 돌파’의 이미지로 읽히며, 용남이 무력했던 삶을 벗어나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성장의 과정으로 전환됩니다. 이상근 감독은 이 장면들에서 CGI보다 실제 촬영과 와이어 스턴트를 적극 활용하여, 리얼리즘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합니다. 실제로 조정석과 윤아는 수개월간 클라이밍 훈련을 받으며 촬영에 임했으며, 촬영 장소 또한 고층 빌딩과 실내 세트를 병행해 사실성을 확보했습니다. 수직 이동 장면은 촬영 각도와 사운드 디자인 측면에서도 극한의 긴장을 조성합니다. 클로즈업과 핸드헬드 카메라를 활용한 인물의 시점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고소공포를 직접 체험하게 만들며, 로프가 끊길 듯한 순간이나 미끄러지는 발 등의 연출은 액션의 긴장감을 실시간으로 전달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장면들은 단지 생존의 기술이 아닌, 인물의 심리 변화와도 연결되어, 그가 단순한 코미디 주인공에서 재난의 주체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엑시트>는 한국 영화에서 흔치 않았던 수직적 액션을 재난 영화 문법 속에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 연출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인물 중심 서사와 감정 공감의 설계 방식

이상근 감독은 <엑시트>를 단순한 재난 서사로 접근하지 않고, 인물의 감정 곡선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성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용남은 전형적인 ‘루저’ 캐릭터로 시작하지만, 가족과 과거의 인연, 그리고 위기 상황 속에서의 선택을 통해 변화해 나가는 성장형 인물입니다. 감독은 그가 처한 사회적 위치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그의 내면에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드러내려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 식사 장면에서 보여지는 무력한 모습이나, 친척들에게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은 현실 청춘 세대의 좌절을 대변하는 동시에,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그러나 재난 상황 속에서 그가 과거의 클라이밍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추스르고, 의주와 함께 행동하게 되는 전환점은 이 영화가 단순한 재난 생존기 이상임을 입증합니다. 특히 조정석과 윤아의 관계는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인연과 현재의 협력을 통해 ‘인간적 신뢰’로 발전하는 구조를 띱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단순한 사랑이나 극복이 아닌, ‘존중과 책임’이라는 정서에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후반부 감정의 고조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또한 가족의 역할 역시 단순한 감정 소모의 대상으로 처리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는 인간 군상으로 묘사됩니다. 어머니의 오열이나 아버지의 침묵, 형제자매의 갈등은 ‘재난’이라는 공통 상황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상근 감독은 이런 감정 구조를 장르적 클리셰에 기대지 않고,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대화와 상황을 통해 구축하여, 관객의 진정성 있는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엑시트>는 비범한 사건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성장을 정교하게 포착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엑시트>는 장르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예 감독의 패기와, 대중적 재미를 아우르는 정교한 연출이 결합된 작품입니다. 이상근 감독은 유머, 액션, 감정을 세밀하게 조율하며 한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고, 평범한 인물의 용기와 연대가 얼마나 강력한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