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2012)’은 다큐멘터리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충격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인도네시아 1965년 반공 학살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가해자들이 과거의 살인을 스스로 재연하게 만드는 형식을 통해 ‘기억’과 ‘책임’, 그리고 ‘윤리’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가 피해자의 증언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반면, 이 작품은 가해자 중심의 시선을 채택하며, 관객에게 강한 불편함과 혼란을 안겨줍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피해자가 침묵한 공간에 가해자의 목소리를 부각시킴으로써, 오히려 권력과 기억의 비틀림을 선명히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액트 오브 킬링’의 독특한 서사 구조, 가해자 중심 재연의 파격적 전략, 그리고 다큐멘터리 윤리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겠습니다.
서사 구조: 허구와 현실의 교차
‘액트 오브 킬링’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처럼 시간순으로 역사적 사건을 따라가는 구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영화는 가해자들이 과거를 ‘영화처럼’ 재현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현실과 허구, 기억과 망각이 뒤섞인 독특한 서사를 구성합니다. 주인공 안와르 콩고는 과거 수천 명을 살해한 인도네시아 준군사조직의 일원으로, 그가 직접 살인을 연기하는 장면은 놀라운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그는 마치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듯 처음엔 흥겨운 분위기로 살인을 묘사하지만, 재연이 반복되면서 점차 내면의 균열과 불안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는 안와르의 감정 곡선을 따라가는 심리극적 구조를 띠면서도, 그의 기억이 왜곡되고 영화적 판타지로 포장되는 과정을 해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서사는 반복적이며 점진적입니다. 한 번의 살해 재연이 끝나면 또 다른 장르—누아르, 갱스터 영화, 심지어 뮤지컬 형식까지 등장하며—로 재현됩니다. 이 방식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기억의 재생산 과정 자체를 비판하는 메타 서사 구조를 형성합니다. 관객은 이 서사 속에서 단순히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기억을 소비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됩니다. 결국 이 영화는 시간의 선형성을 부정하며, 권력과 기억이 결합한 역사의 위험성을 서사의 구조 속에 내장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재연: 죄의식과 자기정당화의 충돌
‘액트 오브 킬링’이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가해자에게 살인을 재연하게 만들고 그 과정을 영화 속에 그대로 담았다는 점입니다. 안와르 콩고와 그의 동료들은 과거 자신들이 저질렀던 학살을 영화 장면처럼 재구성하며 연기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영화적 영웅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재연의 경험 자체가 가해자의 내면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안와르가 자신이 사용한 교수 방법을 다시 시연하며 연기할 때, 그는 갑작스러운 구토 반응을 보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진짜 기억’이 그의 영화적 환상과 충돌하며 드러난 무의식의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이처럼 가해자의 연기를 통해 그의 진심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진심에 도달하게끔 유도합니다. 이 방식은 인터뷰나 고발을 통한 정형화된 다큐멘터리 문법이 아니라, 인간 심리의 불완전성과 자기정당화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둡니다. 가해자들은 종종 웃고 즐기지만, 그 웃음은 뒤틀리고 기이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기이한 웃음 속에서 관객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가?”, “기억은 죄의식을 만들어내는가, 아니면 지워내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이처럼 가해자 중심의 서사를 윤리적 해석으로 전환시키는 독창적인 시도를 통해,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접근을 근본적으로 뒤흔듭니다.
다큐멘터리 윤리: 기억과 권력의 경계 넘기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 윤리의 측면에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해자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 그들에게 살인을 연기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객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하는 물음이 핵심입니다. 일부 평론가는 이 영화가 가해자의 내러티브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운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피해자가 말을 할 수 없는 구조,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피해자 가족의 등장은 극히 제한적이며, 그 존재는 주로 가해자의 언행 속에 희미하게 존재합니다. 이는 의도된 윤리적 긴장으로서, 가해자의 시선을 통해 드러나는 구조적 폭력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는 단지 안와르 콩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사회가 집단적으로 어떻게 기억을 왜곡하고 권력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단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어떤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를 선택하는 윤리적 행위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 선택을 가장 불편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관객은 도덕적 불쾌감 속에서도 끝까지 영화를 보게 되며, 그 경험 자체가 이미 윤리적 성찰의 일부가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고발이 아닌, 관객이 ‘기억하는 자’로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묻는 다큐멘터리 윤리의 실험장이자 선언문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다큐멘터리가 어디까지 진실을 다룰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윤리를 담아낼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허구와 재연이라는 장치를 통해 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진실에 접근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역사적 폭력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폭력을 기억하는 방식과 재생산하는 사회 구조를 비판적으로 들춰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바로 그 불편함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잔혹함을 직면하게 됩니다.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담는 그릇이라면, 이 작품은 그 그릇을 뒤집어 진실을 쏟아버리고, 그 잔해 속에서 무엇이 남는지를 관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실험입니다.